요즘 이 시간대가 제일 좋아요. 오후 다섯 시쯤이면 햇빛이 한라산을 비스듬히 비추면서 산 능선이 살아나는 시간이거든요. 관광객들은 보통 해질녘 노을만 찍고 가는데, 그 전 단계가 훨씬 더 멋있다고 봐요. 산 옆으로 그림자가 생기면서 입체감이 생기고, 색깔도 자주색과 회색이 섞여서 나오니까요.
오늘도 밭에서 퇴비를 정리하다가 잠깐 멈춰서 산을 봤어요. 5년을 살면서도 매일 다르게 보여요. 오늘은 정상 근처에 구름이 띠처럼 감겨있었고, 중턱은 맑게 드러나 있었수다. 이런 날씨는 내일 날씨가 바뀐다는 신호거든요. 제주 사람들은 산을 보고 날씨를 맞춰요. 서울에서는 날씨 앱만 봤는데 말이에요.
요즘 같은 시즌에는 왜인지 자꾸 뭔가 불안해지는 마음이 생겨요. 나이 탓일까, 계절 탓일까. 근데 이런 시간에 산을 보고 있으면 그런 마음들이 조금씩 가라앉아요. 거대한 산이 그냥 여기 있다는 것, 매일 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게 뭔가 위로가 되더라고요.
관광지로 보는 제주와 살아가는 제주는 정말 달라요. 풍경이 아니라 일부가 되는 거니까. 그 차이를 요즘 많이 느껴요.
